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고양이 방울이는 하품을 한다. 옆에서 방울이가 하품을 할 때, 이웃집 미미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이웃집 미미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 이웃집 디디는 무얼 할까? 살짝 웃음이 나왔는데 갈수록 이야기가 무거워진다.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아기를 돌보고, 그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소를 몰고, 여자아이는 빵을 팔더니 산 너머 남자아이는 쓰러져있다. 땅바닥에 엎어져있는 까만 머리통의 아이 뒷모습은 읽는 이를 당혹하게 한다. 다음 장을 넘기기가 겁난다. 서로 이어져있는 세계를 비추는 단순한 구성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아득해진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덕지덕지 물감을 발라놓은 것 같은 그림에 일인칭 어린이 화자의 목소리가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