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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이야기 문을 열어주세요(신은경_양산지회) 사무국 2017.08.16. 1253

 책 읽어 주세요!



이야기 문을 열어주세요

신은경 양산지회


‘책 읽어야 하는데’ 하며 책읽기의 중요성은 알지만, 책보단 TV리모컨을 먼저 손에 잡던 나! 아이들에게 책읽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한 번에 많은 책이 집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전집을 샀고, 책읽어주기가 힘에 부쳐 CD북을 사기도 했다. 단행본이라는 용어도 몰랐다. 8년 전 내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회가 참 고맙다.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주는 엄마가 되려고 보게 된 책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매주 책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어린 나를 돌아보게 했고, 어느 날부턴 엄마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보는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라고 조언하는 ‘부담스럽지만 바른 말하는 친구’였다. 활동 시작 3년 후부터 지금까지 책읽어주기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 지역아동센터에서 책읽어주기를 할 때, 아이들의 호응이 좋고 내가 준비해 간대로 진행이 되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고 준비해 간대로 못 해주고 오면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우리 아이들을 집에 팽개치고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장사꾼이었구나 싶다. 노력하는 만큼 반응해 주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본전을 찾고 싶어 하는 장사꾼.

그러다 내가 준비해 간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던 날에 들었던 뭔지 모르게 불편했던 마음. 다른 책읽어주기 시간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니 깨달음이 왔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건 아이들 스스로 자율성을 발휘할 때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구나! 지금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이름 한번 불러주기 위해서 라는 걸 말이다.


작은 도서관에서 책읽어주기를 할 때 일이다. 날씨가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책읽어주기를 갔는데, 아무도 없는 것이다. 할머니 한 분이 3살 꼬마를 데리고 도서관에 들어오신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고 녀석을 무릎에 앉히고 책읽어주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느꼈다. ‘아이들이 잘 안 듣는다, 아이들이 별로 안 온다.’ 등의 푸념은 내가 노력하는 만큼 인정받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몸을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책을 듣고 있었고, 재미있는 책은 귀신같이 집중해서 듣는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좋은 책을 아이들에게 가져가는 것.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개성 있는 인물이 나오고 아이들 편이 되어주는 책 말이다.


지금은 삽량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점심시간에 1~2학년을 대상으로 책읽어주기를 하고 있다. 점심시간은 수업시간 40분에 쉬는 시간이 고작 10분인 정규교과 중에서 아이들이 그나마 길게 놀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책 읽자고 말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도서관에 와서 재밌게 듣는 아이들이 있으니, 아이들에게서 놀이 시간을 뺏는다는 죄책감은 급식 잔반함에 버리는 걸로. 다음은 5월 18일에 아이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겨울방학 때 도서관 리모델링 작업이 있다고 들었는데, 와서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1·2층 복층구조로 바뀌어 있었다. 1층에 가려니 애들이 2층에서 읽자고 한다. 같이 올라가니 아직 40분. 5분간 가위바위보를 하며 놀았다.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가위바위보 놀이소리에 아이들이 많이 몰렸다. 45분이 되었다. 몇 학년 몇 반인지 이름이 뭔지 묻고, 하이파이브 하니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오늘 이야기꽃도 활짝 피면 좋겠다.
먼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걀》(헬메 하이네 글.그림, 시공주니어)을 꺼냈다. “주인공이 누굴까?” 물어보니, 웃고 있는 왕을 짚는 친구들이 많다. 닭보단 사람이 주인공으로 보이나 보다. “주인공을 한 명이라고 생각하네.”라고 말해주었다. “이야기 문을 열어주세요.” 하니 첫 아이가 살살 책을 두드린다. “너무 약해서 안 열리네.” 했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아이들 표정에 장난기가 어린다. 다 한 번씩 두드려 본 후 표지를 넘겼다.


면지에 찍힌 발자국을 보여주며 닭이 몇 마리일 지 물으니, “124마리요.” 하는 친구도 있다. 3마리가 따로 왔다가 한곳에서 같이 놀다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하니 아이들 마음은 이미 뒷장에 가 있다. 빨리 넘기라고 한다. 세 마리가 서로 자기가 더 예쁘다며 다투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에는 없지만, 서로 예쁘다고 잘난 척 하는 대화를 넣어 읽어주니, 녀석들 재밌어 한다. “너희들은 어떤 아가씨가 제일 예뻐?”라고 하니 여자 친구들은 화사깃털 아가씨, 남자아이들은 멋진 볏 아가씨를 제일 예쁘다고 했다. 아가씨들끼리는 누가 더 예쁜지 가릴 수가 없어 임금님을 찾아가는 부분에선 “왜 못 가리지? 난 화사깃털이 예쁜데.”라며 가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녀석도 있었다. 임금님은 가장 아름다운 알을 낳는 아가씨를 공주로 삼겠다고 했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아가씨가 어떤 알을 낳을지에 집중되었다. 화사깃털 아가씨가 알을 낳는 부분에서는 “무늬 알을 낳을 것 같아요.”라고 민지가 이야기했다.

“과연 그럴까?” 하며 넘기니, 흠집하나 없이 완벽하고 눈부신 알이 나왔다. “늘씬 다리 아가씨는 어떤 알을 낳을까?” 물어보면서 이건 틀리고 맞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이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대답이 더 활발하게 나왔다. 날씬 다리 아가씨가 거대한 알을 낳은 장면을 보자, “와” 하는 함성이 나왔다. 이번엔 멋진 볏 아가씨 차례. 어떤 알이 나올지 상상하는 장면에서 “황금 알이 나올 것 같아.”, “쌍둥이 알일지도 몰라.” “달걀 후라이가 나오면 내가 냠냠.” 등 즉흥적 말을 넣어 읽어주었다. 멋진 볏 아가씨가 네모반듯한 알을 낳자 반전의 느낌을 받은 듯 조용했다.


뒷면지의 발자국을 보며 “왕과 공주들이 바다로 가고 있어요.”, “궁전에 가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집에 와서 다시 책을 보니, 뒤표지에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이 행진하는 장면이 보인다. 자신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성장하고 있는 병아리들. 네모 몸통 병아리를 아이들에게 보여줬다면 재밌어 했을 텐데…. 뒤표지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두 번째 책 《예쁜이와 버들이》(박영만 원작, 원유순 엮음, 허구 그림, 사파리)를 꺼냈다. 같이 예쁜이와 버들이를 손으로 짚어본 후 “이야기 문을 열어주세요.” 하며 책을 들고 아이들 앞으로 움직였다. 두 줄 아이들의 손길을 다 받은 다음 표지를 넘겼다. 예쁜이에겐 자신을 괴롭히는 의붓엄마가 있다. 나도 모르게 ‘의붓어미’를 ‘새엄마’라고 읽어버린 후, 계속 ‘의붓어미’를 ‘새엄마’라고 바꿔 읽었다. 근데 마지막쯤에서 나도 모르게 ‘의붓어미’라고 읽어버려 나만 당황했다. 아이들은 별로 신경도 안 썼다. 아이들이 이해 못하면 어쩌지 하며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한 모양이다. 이야기의 힘을 믿고 아이들을 믿을 것을 다시금 다짐한다.


새엄마는 눈보라 치는 날에 예쁜이에게 나물을 해오라며 내보낸다. 예쁜이가 나물을 찾아 꼬불꼬불 산을 넘어가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저어기 까지 갔어요.”라며 예쁜이가 점처럼 작게 보이는 것도 손으로 짚어내고, 예쁜이가 다다른 동굴도 내가 읽기 전에 먼저 찾아낸다. 예쁜이가 나물을 구할 수 있게 되자, 다들 안심하는 표정이다. 허겁지겁 나물을 뜯는 예쁜이 뒤로 버들이가 나타나 예쁜이에게 말한다. 나물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라고. 버들이 말에 예쁜이는 수줍어하고 둘의 콩닥콩닥 모습에 아이들은 웃으며 즐거워한다. 다음 날 새엄마는 나물을 해오라며 예쁜이를 보내고 그 뒤를 몰래 따른다. 새엄마가 예쁜이와 버들이가 만나는 걸 동굴 뒤에서 훔쳐보자, 아이들 사이에도 정적이 흐른다. 새엄마를 그림에서 찾아내는 녀석도 있다. 새엄마는 나물을 해온 예쁜이가 집에 오자, 예쁜이에게 부지깽이를 휘두른다. 걱정스런 표정을 한 아이들 틈에 묵직한 침묵이 흐른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잠깐의 틈을 둔다. 지금 아이들은 이야기 속에 있다.


새엄마는 버들이를 뼈로 만들어 버리고, 예쁜이는 평소처럼 동굴에 가서 뼈가 된 버들이를 발견한다. 예쁜이가 목 놓아 우니, 아이들도 슬퍼진다. 예쁜이가 버들이를 살릴 수 있는 병 세 개를 생각해 내자, 아이들 얼굴에 안도감이 어린다. 살아난 버들이는 예쁜이에게 말한다. 사실 자신은 하늘나라의 예쁜이 엄마가 예쁜이를 돌봐주라고 오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이제 버들이와 예쁜이는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를 보고 있는 새엄마의 대사를 넣어 읽어주었다. “예쁜이 없으니 나물도 내가 하러 가야 되고. 에그 예쁜이 있을 때 잘할 걸.” 아이들이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아이들이 보이는 몸짓과 표정과 침묵은 어떠한 말보다 강한 반응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엔 차임벨을 이용한다. 시작 할 땐 내가 차임벨을 치고, 마칠 때는 “○○야, 반가웠어. 다음 주에 보자.” 하며 하이파이브 한 후, 아이들이 차임벨을 울린다. 우리만의 독서골든벨! “선생님, 우리 이름 다 외웠어요?” 하며 나를 신기 해 하는 녀석도 있다. 이야기 시간에 끝까지 함께한 친구들은 누구든 울릴 수 있는 것이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시간의 골든벨이다.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나온 아이들이 순서대로 울리는 벨소리는 언제나 경쾌하다.

 

 

*2016년 10월호 <동화읽는어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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