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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언제나 방가방가 (정미연_오산지회) 사무국 2017.08.11. 1173

 

 

책 읽어 주세요!

 


 

 

 

언제나 방가방가

 

정미연 오산지회

 

모처럼 센터를 찾았던 어느 수요일. 나이가 지긋하신 한 분이 그날따라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고 방가방가하면서 반겨 주었다. 언젠가 한번은 새 점퍼를 샀다고 쑥스러워하며 자랑했던 바로 그분이다. 오랜만에 센터를 찾아간 걸 알아채고 반겨 주는 것 같아 왠지 기분이 더 좋았다.

오산지회 회원 4명이 21조로 매주 수요일마다 책읽어주기 활동을 하는 이곳은, 18세 이상의 발달장애가 있는 분들을 주간 동안 보호·교육하는 장애인주간보호센터이다. 격주로, 때론 개인 사정으로 한 주를 더 거르고 찾아가기도 하는데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늘 마음이 훈훈하다.

 

재작년 11월 초, 처음 이곳 친구들을 만났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1년을 훌쩍 넘겼다. 책읽어주기 경험이라곤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잠깐,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읽어 준 게 고작이었던 내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중단해야만 했다. 한창 육아로 허덕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때 무작정 시작을 했던 터라, 내 아이도 잘 다루지 못하면서 까불까불하고 조금은 짓궂은 아이들에게 유연한 마음으로 더 이상 책을 읽어 줄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땐 너무 시기가 일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해도 맞받아치며 오히려 더 즐겁게 책읽기를 했을 텐데, 가끔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날 알아보고 길에서 인사할 때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혼자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이곳 장애인센터 친구들은 성인이긴 하지만 발달장애가 약간 있어, 지적 수준은 37세로, 사실 어린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 이곳 활동을 시작하기 전엔 발달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걱정이 많았는데, 장애가 없는 보통 아이들을 상대할 때보다도 힘들지 않고, 마음도 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좋은 기운을 받고 올 때가 더 많다.

바짝 긴장하며 권정생의 강아지똥(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을 들고 갔던 첫날. 친구들은 이라는 단어에 키득키득 웃다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반응에 나도 맞장구를 쳐 주었으면 좋으련만 긴장한 나머지 책 읽어 내리기에만 바빠 아쉬웠던 첫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정신연령은 아이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사랑이야기에도 관심이 많고, 유독 이라는 단어에 민감해 강아지똥이나 똥떡(이춘희 글, 박지훈 그림, 사파리) 같은 이야기에 반응을 크게 보여 주는가 하면, 느닷없이 가수 현아목소리로 책을 읽어 달라는 요구를 해, 책을 읽어 주던 회원이 난처해했던 일도 있었다.

 

한번은, 우리 회원 중 한 명이 선녀와 나무꾼(김순이 글, 이종미 그림, 보림)을 읽어 주었는데 선녀들이 목욕하는 장면에서 부끄러워 얼굴까지 붉히기도 했고, 어떤 그림책에선 옆에 있는 여자 친구가 혹시나 그림을 볼까 봐 눈을 가리기도 했다. 동물이 등장하는 책에선 울음소리도 제대로 흉내내고, 얼마 전에 읽어 주었던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오호선 글, 윤미숙 그림, 길벗어린이)에서는 나 혼자 읽었더라면 재미없고 뻘쭘했을 노랫구절을 친구들이 같이 불러 주어 서로 주고받으며 즐겁게 읽고 온 적도 있다.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보았던 책은 조금 시시해하거나 아는 체를 하며 관심을 안 보일 때가 있는데, 이곳 친구들은 몇 번 읽어 줬던 책이라도 흥미로운 이야기에 매번 큰 반응을 보여 읽어 주는 마음 또한 신이 난다.

 

책표지를 펼쳐 주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어설프게나마 제목을 먼저 읽어 주기도 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곧잘 해주고, 이야기를 듣다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짐작하고 먼저 말을 해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재미있거나 너무 지루하거나, 약간은 언짢은 내용이어도 고스란히 반응을 보여 주니 간혹 졸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띄어도 좋다.

항상 머리를 뒤로 곱게 땋고 오는 한 친구는 한동안 오늘의 책은! ○○○.” 하며 그날 읽어 준 것 중에 어떤 책이 재밌었는지를 선택해 나름의 평가를 해줬다. 그럼 왠지 더 뿌듯하다.

 

지금은 센터에 나오지 않는 한 친구는 책읽어주기를 마치고 나오는 우리에게 다가와 가끔씩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곤 했다. 내내 꼭 쥐고 있었는지 미지근해진 귤 하나, 포장이 꼬깃꼬깃해진 사탕 하나, 손에 딱 달라붙었다 떼어진 잣 몇 알. 책 읽어 주는 우리를 기다려 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친구들의 소박한 마음을 받을 땐 더없이 기쁜 마음이다.

 

센터에 늘 보이던 친구가 안 보이면 궁금해 묻기도 하고, 유난히 기분이 좋거나 안 좋아 보이면 그 이유가 궁금하고, 친구들이 한마디씩 건네는 말들이 어느 정도 잘 들리는 걸 보면 이곳을 찾는 내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하다.

책 읽어 주는 도중 느닷없이 울거나 지도 선생님이 달래도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거나, 또는 큰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하는 돌발행동들이 초반엔 굉장히 당황스럽기만 했다.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젠 이런 행동들을 자연스레 받아지게 되었다.

 

 

아마 이곳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발달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여전히 남아, 늘 거리를 두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냉랭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림책 한 권으로 친구들과 얼마나 소통을 할까 싶었지만, 거의 말이 없던 친구가 책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인 모습을 볼 때, 느닷없이 울고 우울해 보이던 친구가 지금은 많이 밝아진 모습을 볼 때면 30분이라는 이 짧은 시간이 그 친구들에게나 나에게도 참 소중한 시간인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 친근함이 생긴다.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언제나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친구들이 참 고맙다.

 

이다음에 또 아이처럼 손을 흔들며 방가방가하고 인사를 건네면 그땐 나도 똑같이 손을 흔들어 방가방가답례를 해야지.

 

 

 

*2016년 6월호 <동화읽는어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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