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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책 읽어줄 때,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안연희_영천지회) 사무국 2017.08.08. 1409

책 읽어주세요!

 

책 읽어 줄 때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안연희 영천지회

 

 

 

2004년 여름책읽어주기를 처음 하게 되었다시작할 때 첫 마음은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명감 같은 것이 컸다어린이책을 전혀 모르고 살던 내가어린이책을 만나 즐겁고 행복했던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게 해주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다그 간절함이 낯선 자리 낯선 사람을 유난히 불편해하는 내 본성을 누르고 처음 보는 아이들을 만나러 갈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단 10여 분을 위해 1주일을 꼬박 연습하고긴장하고걱정하고 잠도 못 잤다그런데도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떨리고 긴장해서 머리가 하얘지고 아이들 눈 한번 마주 보지 못했다집에서 용감하게 나와서 덜덜 떨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허탈하게 돌아오곤 했다.

 

지금도 정말 장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부담스러워했으면서도 그게 뭐라고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아마도 그림책이 너무 좋았고 막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엄청난 부담감과 커다란 사명감을 가지고 학교로도서관으로 책을 들고 아이들을 찾아다녔다처음에는 내가 좋으니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어떤 날은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할 때도 있었고또 어떤 날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일 때도 있었다뿌듯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힘들고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책읽어주기를 시작하고 10년이 더 지난 2015나는 지금도 책을 읽어 주고 있다이제는 떨지도 않고긴장도 하지 않으며연습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눈빛 교환도 잘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편해지고 익숙해진 일이 처음처럼 즐겁지가 않다.

 

습관처럼 생활처럼 책읽어주기를 하면서 즐기지 못하는 나를 만날 때 명쾌하지 않고 불편하다익숙해진 만큼 정성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어른의 눈높이로 어린이책을 보는 것은 아닌가아이들을 잘 보지 못하고 책만 보는 것은 아닌가나는 책으로 아이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는 걸까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동화동무씨동무 활동 기록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아이들 말은 역시 참 이쁘구나내가 책을 읽어 주는 동안에도 아이들이 어떤 말들을 했을 텐데 책 읽어 주느라 놓쳐 버린 건 아닐까나도 녹음을 해서 들어 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내가 읽어 주는 동안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순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그래서 책을 읽어 주면서 녹음을 시작했는데들어 보니 아이들은 참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다반응이 아주 좋은 관객이었다가 책 속으로 들어와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해설자도 되었다가 책 속 인물과 싸우기도 했다.

 

 

 

2015년 5월 작은도서관에서 정진호의 위를 봐요!를 읽어 줬는데유난히 아이들이 재잘재잘 이야기가 많았다.

 

처음에 표지를 보여 줬더니 다현이가 얼굴이 보이는 아이를 가리키며 얘만 위를 보고 있어.” 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보이지?” 물었더니 아이들이 위로아래로앞으로아래로.” 난리법석이다그때 다현이가 위로 붕 떠서 아래로.” 했다답을 알고 있는 나는 건물 위에서 보지 않아도 이렇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네.’ 생각하고 있는데도연이가 에이어떻게 위로 붕 떠서 아래로 봐요?” 한다. “위로 붕 떠서 아래로 보는 방법이 없어?” 하고 물었더니다현이가 옥상에 올라가서 아래로.” 한다도연이가 다시 옥상에 올라가면 떨어져 죽잖아요.” 한다내가 떨어지지 않고 보기만 하는 거지.”라고 말했더니 다현이가 옥상에 올라가서 잡는 거 잡고어 아래로 내려다보면 돼요.” 한다.

 

표지를 보고 어느 위치에서 보면 그렇게 보이는지 무슨 그림인지 대개는 공감하지 못해서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그림인가 했었다그런데 아이들이 말을 막 쏟아내면서 나오는 생각들이 책 내용과 맞아떨어져서 신기했다.

 

길에는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기도 했어.” 장면을 읽고 있는데 도연이가 대뜸 저러다가 밥 안 먹는 거 아니에요?” 한다도연이는 첫 장에 수지 엄마가 수지야 밥 먹어야지.’라고 한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아래만 내려다보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만 하는 수지가 밥 안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밥 못 먹고아까 수지야 밥 먹어야지’ 이랬는데 그치?” 하고 물었더니다른 아이들도 밥만 다 식어가고.”, “엄마 혼자 다 먹고.” 한다. “엄마 혼자 다 먹고?” 나는 밥 안 먹어서 엄마가 속상해한다거나엄마한테 혼난다거나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엄마 혼자 다 먹을까 봐 안타까워하는 거였다.

 

수지는 그냥 묵묵히 지켜보았어.” 하고 읽은 순간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그림을 보면서 세은이가 사람들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다.” 했다.

 

땅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아?” 물었더니아이들이 저마다 보이는 대로 얘기한다도연이는 걸어가는 것 같다.” 다현이는 땅속에 몸이 묻혀 있는 것 같다.” 세은이는 앞으로 보니까 그렇게 보여요.” 은찬이는 눈동자 같아.” 규빈이는 땅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다.” 규린이는 그냥 위에 몸만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이 장면이 좀 음산하고 무섭게 느껴졌는데 아이들도 모두 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는 걸 보니 할 말이 많은 장면인가 보다.

 

 

 

처음으로 수지를 보고 아이가 눕는 장면에서 도연이가 누워 있어.” 했다내가 누워 있지?” 했더니 다현이가 너무나 애석하게 그럼 다 안 보여!” 하고 소리친다.

 

다 안 보여다 보이잖아.” 하고 물었더니 다현이가 아니.” 한다나는 충격을 받았다그동안 열 번도 넘게 대상도 장소도 다르게 읽어 줬는데 모두가 눕는 장면에서 !’ 하고 감동을 했다뒤가 안 보여서 탄식하듯 안타까워하는 다현이의 반응에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뒤가 안 보인다고?” 다현이는 뒤가 안 보여요.” 한다앞모습만 보이면 다 보인다고 생각했던 내가 참 평면적인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쪽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난 화분이 있는 장면을 보여 주니 도연이가 인제 간다.”라고 한다나중에 그림을 다시 펼쳐보니 한 아이가 올려다보면서부터 책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수지를 올려다보느라 사람들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그러다가 마지막 쪽에 사람들이 갈 길을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도연이는 밥 안 먹고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는 수지도 걱정이고가야 할 길 안가고 올려다보고만 있는 사람들도 걱정되나 보다나무 아래서 웃으면서 위를 보고 있는 수지를 아이들이 알아보는지 궁금해서 수지 보여?”라고 물었더니아이들은 안 보인다고 한다. “수지 어디 갔지?” 했더니도연이가 밥 먹으러.” 한다시작할 때 수지야 밥 먹어야지를 아직도 기억하는 도연이순간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생각났다맥스가 따뜻한 밥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돌아온 것처럼수지도 엄마가 차려 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러 갔을 수 있겠다.“밥 먹으러 갔구나!”

 

다현이가 화분.” 하니까 규빈이가 벚꽃도 피었네.” 한다. “수지는 뭐 하고 있어?” 하고 다시 물었더니 벚꽃 보고 있어.” “위를 보고 있어.” “벚꽃도 보고.” 재잘재잘아이들이 정말 이쁘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그냥 책만 읽어 줄 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그런데 녹음을 하면서부터 나 혼자 막 달려 나가는 책읽어주기를 멈추게 되었다아이들이 말을 하면 들어 주는 여유공감해 주는 추임새가 가능해졌다아이들 말을 잘 듣게 되고내가 재미있어서 읽어 주는 것보다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알게 될 때마다 책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녹음해서 다시 듣는 일은 참 번거롭고귀가 약한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그런데도 찬찬히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아이들 말이 신기하고 예뻐서 혼자 실없이 웃는다책을 선택할 때 아이들이 어떤 재미를 느낄지 궁금하고 기대하게 된다.

 

책을 읽어 줄 때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책 읽어 주러 가는 일이 다시 설레고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15년 9월호《동화읽는어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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